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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대한민국청소년기자대상] 자유야 너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무슨 일을 저질렀는냐(0)
기자
청심국제고등학교 | 유승완 청소년기자
기사입력
2017.10.31 18:02
조회수
1986

  • 기사내용 요약 (주제)

  • 우생학에 사로잡힌 우리
  • 글 기사
  • 자유야 너의 이름으로 사람들은 무슨 일을 저질렀는냐 

     

             청심국제고등학교

              2학년 1          유승완

     

    이 명언은 과격한 지롱드파에 의해 정적으로 분류되어 사형을 당하기 전 장 마리 롤랑드가 한 말이다. 그녀는 왕정을 타파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데에서는 뜻을 같이 했지만, 이를 이루는 방법에 의견을 달리해 정치적으로 숙청당했다. 그녀가 남긴 이 명언은 자유, 인권, 안전 보장이라는 중요하고, 필수적인 단어들을 앞세워 의견, 생각, 행동,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것을 싫어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얼마전 서울시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다. “왜 강서구에만 혐오시설(장애인 특수학교)이 들어오나.”라는 주민들 앞에 무릎 꿇고 사정하는 장애아동 학부모들의 사진이 신문에 크게 실렸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이러한 인간의 본능은 싫어한 것을 잘못된 것으로 확대해석하게 만들었고, 이는 소수자의 인권 침해, 우생학 등으로 이어졌다. 장애인, 부랑자, 정신질환자 등은 이러한 편견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중 한센인들이 가장 부당하게 차별받는다.

     한센병은 전염력이 약한 전염병으로 치료약이 개발되면서 이미 1950년대부터 완치가능한 질병이었다. 그러나 한센병 환자들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소록도 병원 같은 한센인 수용시설에 격리됐고, 완치 후에도 사회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센인 마을에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재작년 2015년 메르스 사태를 돌이켜 보면, 초기에 환자를 격리하는데 실패한 바람에 나라 전체가 대혼란을 겪었었다. 물론 병의 확산을 막는 데에는 전염병 환자를 격리 치료하는 것이 사회적 위험을 막는 가장 확실한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같은 전염병인데 성병환자, 독감환자, 콜레라· 장티푸스환자는 따로 시설에 격리하지 않을까? 오히려 전염성이 약한 한센인들만 왜 격리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실 전염병 환자를 격리하느냐 마느냐하는 기준은 그 전염병이 사회에 얼마나 치명적인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 한센병 환자에 대한 격리수용 사례는 질병의 치명성과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심지어 유전되지 않고, 완치가 가능한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한센인 수용 시설에서는 한센인을 대상으로 정관절제수술이나 인공낙태수술을 시행해 자녀를 가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한센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외국의 선례를 따라 수용시설을 폐쇄하는 것이 과연 답일까? 그렇지 않다. 외국의 사례가 성공했다고 그것이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법은 절대 없다. 기본적으로 국방비 때문에 덜 주목을 받는 복지비, 우리나라 국민의 편견을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의식변화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기준 확립이 제일 중요하다. 여기에서 칼 정상화의 원리(그 사람의 삶이 보통 사람과 같아야), 일상생활 보장의 원리, 작은 그룹의 거주 환경 조성의 원리(지역 사회 한 가운데 위치해 있어야) 등이다. 이를 토대로 칼 박사는 300명의 거주인, 가족과 직원, , 시설에서 나왔을 때 더 좋은 삶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였고, 지역사회와의 꾸준한 협력으로 장애인 수용시설에 있던 300명을 시설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이러는 데에도 8년이 걸렸다. 단기간에 결과를 얻기보다는 오랜기간 동안의 연구와 관찰로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더 나아가 인간같은 삶을 살수 있게해야 한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격리된 환경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게 특수교육의 오래된 정설이다.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각자 수준과 욕구에 맞는 적절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보통의 일반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 때, 훗날 우리가 사회적 약자가 됐을 때 누군가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다. 이제 막연한 거부감과 불안을 거두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마땅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을 떠도는 근대 우생학의 망령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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